정재호 개인전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남미리 기자, 문학뉴스, 12 January 2023
초이앤초이 갤러리(서울시 종로구 팔판길 42)는 정재호 작가의 개인전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을 13일부터 2월 25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2020년 쾰른 갤러리에서 열린 3인전 ‘Moment to Monument’와 2022년 베를린에서 열린 ‘Berlin meets Seoul’ 단체전 및 서울에서 개최된 ‘FLOWER’ 단체전에 이은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잔재로 남아 있는 건물들을 한지와 캔버스에 사실적으로 묘사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몇 년간 을지로를 배경으로 지속해온 작업의 신작들을 전시한다. 을지로는 한국의 역동적인 현대사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만 지금은 방치되고 낙후돼 점점 낡아가는 일종의 타임캡슐로 남았다. 작가는 이 사라져 가는 장소를 관찰하며 그 특성과 의미를 화폭에 담는 작업을 지속해왔고, 이러한 작품들을 이미 2020년 참여했던 전시에 선보인 바 있다. 철거돼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건물들을 직면하며 정면 구도로 그린 사실적인 그림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일종의 학구적인 아카이브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작품은 가시적인 형태가 아니라 건물 하나하나에 스며든 ‘삶의 체취’를 담고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가던 이름 모를 인물들의 흔적을 담고자 한 작가의 그림은 그만큼 서정적이고 아련하다.

전시 제목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은 작가가 20여 년 전 그린 한강 부근 풍경화에서 따온 것이다. 민족의 지나간 서사를 건축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기념하며 시작했던 일련의 작업이 지속되는 동안 이제는 그 건축물들마저 과거가 됐다. 회화를 통해 잊힌 기억을 되살리고 과거에 파묻힌 것들을 재발굴하는 작가는 여러 해를 함께해온 그 풍경에 애도를 표하며 과거로부터 지속돼 온 자신의 마음을 다시 바라본다.

정재호(1971~) 작가는 서울에서 출생했고, 서울대학교와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2018년 올해의 작가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현재는 세종대학교 회화과 동양화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상업화랑, 갤러리현대, 갤러리소소, 금호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또 쾰른·베를린·요르단·서울 등에서 진행된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금호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주요 미술관·기관·개인 컬렉션 등에 소장됐으며, 작가는 현재 고양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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