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인생 첫 개인전을 펼친 캐서린 안홀트는 누구인가

김형욱 에디터, Harper's Bazaar, 21 June 2023
미술계에서 주목하는 회화 작가인 톰 안홀트는 이처럼 말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인 어머니 '캐서린 안홀트'가 65세의 나이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펼친다. 삼청동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초이앤초이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사랑, 인생, 상실〉은 캐서린 안홀트의 첫 개인전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영국 데번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그녀의 작품 속에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풍경 묘사와 몽환적인 색감이 어딘가 따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랑, 인생, 상실〉 전시장 전경

〈사랑, 인생, 상실〉 전시장 전경

 〈사랑, 인생, 상실〉 전시장 전경

〈사랑, 인생, 상실〉 전시장 전경

작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한국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네요. 첫 개인전을 선보인 소감은?
이제야 오롯이 제 작품으로 갤러리 공간 전체를 채울 수 있게 되었어요. 이번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던 점, 그리고 그들과 작업 방식과 그림 속 이야기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을 담은 2권의 책도 함께 만나볼 수 있는데요. 관객분들이 이 스케치북을 통해 볼 수 있는 제 작업방식에 유독 많은 관심을 보여주신 부분도 인상적이었죠.
 
한국이 어떤 인상으로 남았는지 궁금하네요.
사실 서울은 두 번째 방문이에요. 과거와 현재의 조화가 돋보이는 매력적인 서울은 항상 친절하고 진심 어린 태도로 저를 맞이하는 듯해요. 
 
이번 전시는 아들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톰 안홀트가 기획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톰 안홀트는(이하 톰) 저의 진실된 모습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가장 많이 고민했어요. 이번 전시의 주제인 '사랑, 인생 그리고 상실'이 제게 어떤 의미이고 작품에 어떻게 표현되어있는지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톰이죠. 지난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기도, 아름다운 손녀를 세상에 맞이하기도 했어요. 삶은 항상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있고 이는 우리가 모두 경험하는 것이죠. 
 
톰 안홀트는 아들로서, 그리고 동료 작가로서 어떤 존재인가요? 
우선 저와 톰은 그림 그리는 고독을 즐기는 편이에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고립된 환경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것은 하나의 피난처라고 느끼죠. 톰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까지도 열심히 하는 그의 삶의 여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어머니로서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톰을 예술가로서 존경해요. 그의 작품에는 관람객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순진무구함이 있어요. 작품에 자신이 느끼는 것을 모두 쏟아놓고 솔직함을 작품에 온전히 담아내려고 하죠. 동료 예술가이자 부모 자식으로서 항상 서로에게 지지를 보내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존재이죠. 
 
Catherine Anholt, Love, Life, Loss, 2022, Oil on linen, 50 x 38 cm

Catherine Anholt, Love, Life, Loss, 2022, Oil on linen, 50 x 38 cm

전시 타이틀인 〈사랑, 인생, 상실〉은 동명의 작품이기도 하죠. 
오랜 시간 동안 모셨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5일 뒤 남동생도 세상을 떠났던 힘든 시간이 있었어요. 물론 이런 비극은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일어날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힘들었어요. 그 당시 저는 그 감정이 좋던, 나쁘던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했어요. '시각적 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항상 내면 깊은 곳에서 느끼는 것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싶었던 저에게 이런 작업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었죠. 
Catherine Anholt, Figures in a Landscape 2, 2022, Oil on linen, 75 x 100 cm

Catherine Anholt, Figures in a Landscape 2, 2022, Oil on linen, 75 x 100 cm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에게 특별히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나요?
예술 자체는 매우 주관적일 수 있죠. 하지만 사랑, 인생 그리고 상실이라는 주제 자체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현대인의 삶은 모든 측면에서 완벽해야 한다고 집착하게 만들어요. 하지만 그런 완벽함은 불가능한 꿈이고 우리를 불행하게만 할 뿐이죠. 삶의 불안전함과 끊임없는 변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해요. 지금 우리는 암울한 현실에 직면하기도 하는데, 모두가 함께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해요. 자연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경외감과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어요.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충분히 만족해요.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어떤 감정이라도 끌어냈다면 예술가로서의 제 역할을 다 한 것 같아요. 
 
작품들을 바라보면 동화 같은 부드러운 색감이 인상적이에요. 동화 삽화 작업을 오래 해 온 경력의 영향일까요? 
사실 색감이 특별하다고 느끼진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다니 흥미롭네요. 삽화가로 활동하면서 주로 사용해온 색들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꽤 있지만, 제가 사는 영국 남서부 지방의 부드러운 시골 풍경에서 영향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예술가로서의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예술가의 삶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고 변화할 수 있는 자세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시대에 적응하는 것 또한 중요하죠. 만에 하나 그림을 전시하거나 판매할 수 없게 되더라도 저는 작업을 이어갈 거에요. 그림을 그리는 일은 제 정체성의 중심이기 때문이죠. 저를 아는 사람들은 집요하고 완고한 사람이라고 저를 표현할 것 같아요.  
 
당신에게 예술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예술은 제 인생의 방향을 잡아주는 '노'입니다. 제게 예술이 없었다면 길을 잃었을 거예요. 전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작품 활동은 물론 과거, 현재를 아우르는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부터 큰 기쁨을 얻습니다. 예술이 없었다면 세상은 훨씬 어두운 곳이었겠죠?
Catherine Anholt, Towards Night, 2022, Oil on linen, 75 x 115 cm

Catherine Anholt, Towards Night, 2022, Oil on linen, 75 x 115 cm

 
이번 전시 이후 어떤 프로젝트들이 기획되어있나요?
지금은 ‘beauty in the broken’을 주제로 한 새로운 작품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도공이셨는데, 항상 저의 그림을 도자기 접시, 컵 등에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함께 협업할 수 있는 도자기 업체를 찾아볼 계획이기도 하고요. 사실 지금의 마음으로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업실에서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사랑, 인생, 상실〉 은 '초이앤초이 갤러리'에서 6월 24일까지 열린다. 
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팔판길 42 초이앤초이 갤러리
시간 : 10:00 - 18:00 (일, 월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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