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수진, Daughter of the Forest, 2025, watercolor on paper, 31x23cm(Detail cut) 사진=초이앤초이 갤러리 쾰른, 작가 제공]
[문학뉴스=남미리 기자] 초이앤초이 갤러리 쾰른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여성 작가 다섯 명의 단체전 <그녀가 결코 쓰지 않은 시처럼(Like a Poem She Never Wrote)>을 8월 1일부터 30일까지 개최한다. 전시회 제목은 작가들의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의미한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처럼, 그들의 작품은 색채, 형태, 물질성, 상징성을 통해 언어를 초월한 시각 언어로 표현된다.
이번 전시에서 회화와 조각으로 표현되는 작품들은 각각 고유한 시적 언어를 만들어가는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한곳에 모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징들을 가시화하고, 이는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독일 베를린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는 박지나(b1980) 작가의 작업은 서로 다른 문화를 접하며 살아가는 개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정밀한 에그 템페라 기법을 통해 기억과 환상, 문화적 파편들이 충돌하는 초현실적 시각 세계를 회화 속에 펼쳐낸다. 동아시아 회화 전통의 고정된 시점이 없는 구성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그녀의 화면에는 이국적인 식물, 동물, 유물들이 혼재하며 다양한 은유적 요소들이 공존하는 ‘경이로운 방’이 형성된다. 이는 문화적 소속감, 전유,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보물’, ‘수호자’, ‘강도’라는 반복적인 도상을 통해 탈식민주의적 권력 관계와 ‘이방인’을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에 대한 성찰을 끌어낸다.
이탈리아 로마에 거주하는 권죽희(b1981) 작가는 오래되고 버려진 책들을 섬세하고 다양한 형태의 종이 조각으로 변환시킨다. 책의 페이지를 자르고, 반죽하고, 찢고, 형태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흘러내리는 ‘종이 폭포’부터 둥지나 고치 같은 구상 조각, 그리고 추상적인 형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각 작업을 완성한다. 그녀의 작품은 시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창조물로 무상함과 부재, 반복에 대한 명상적 탐구로 이어진다. 고서에 쓰인 활자들은 본연의 기능을 잃는 동시에 시간성을 부여받고,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권죽희 작가는 작품을 통해 모든 끝에는 또 다른 시작이 있음을 보여주며, 파괴와 소멸의 과정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시킨다.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 활동을 이어가는 스텔라 수진(b1983) 작가는 여성성에 대한 관념과 그것에 고정적으로 연관된 시각 언어인 꽃, 여성 성기, 진홍빛 입술의 초상을 통해 우리의 인식 속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인식에 깊이 뿌리내린 전형적이고 공식적인 접근 방식에 맞서며, 수채화를 주요 매체로 사용한다. 감각적인 색채 팔레트와 불안감을 자아내는 이미지를 통해 상징과 초현실주의, 신화와 현실이 공존하는 장면들을 구축한다. 그녀의 작품은 때로는 미학적으로,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게 표현되며, 관람객들에게 고정된 관념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성찰의 문을 열어준다.
서울에서 작업하는 홍세진(b1992) 작가의 작품은 제한된 청각 감각 속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삶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일상적인 대화나 소리에는 접근할 수 없고, 오직 95데시벨 이상의 극단적인 굉음, 예를 들어 비행기 엔진 소리나 금속 충돌음 같은 소리만을 인지할 수 있다. 이러한 감각의 결핍과 단절은 단순히 소리를 시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예술적 실천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회화와 설치를 통해 인간 감각의 비정형적 언어와 신체적 인지를 조형적으로 실험하며, 감각의 전환이 어떻게 또 다른 인식의 장을 열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파스텔 톤의 기하학적 구성, 완벽한 대칭과 유기적 곡선의 대비, 베일처럼 가려진 반투명한 표면은 모두 이러한 탐구의 시각적 결과물이다. 감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 언어를 통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작업하는 이소정(b1993) 작가는 자신의 꿈과 악몽을 상징이 풍부한 시각 세계로 전환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에서 영감을 받은 그녀는 외로움, 소외감과 같은 감정 상태를 섬세하게 회화로 표현한다. 종이비행기, 비옷 등 일상적인 사물에 새로운 상징성을 부여하며, 화면 속 인물들과 함께 이 요소들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소정의 회화는 그렇게 몽환적인 긴장감과 감정의 깊이를 지닌 고유한 생명력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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