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앤초이 갤러리는 아민 보엠(Armin Boehm), 캐서린 안홀트(Catherine Anholt), 데일 루이스(Dale Lewis), 대니 레일랜드(Danny Leyland), 우베 헤네켄(Uwe Henneken)의 5인전 “small eternities”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거대한 서사나 장엄한 기억이 아니라, 하루의 온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의식의 순간적인 흔들림, 반복되는 일상의 조각들, 그리고 그 모든 날 이후에 남는 빛과 같은 아주 작은 순간들이 시간이 지난 뒤에도 우리 안에 남아 ‘작은 영원’을 만든다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다섯 명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포착해온 존재의 미세한 흔적, 관계의 결, 의식의 층위, 일상의 풍경을 한자리에 모아,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구조와 그 사이에서 발견되는 작은 영원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현대사회의 실상을 거품 없이 포착하는 아민 보엠(Armin Boehm, b.1972, German)의 회화는 내재된 서사와 겉으로 보이는 그림의 구성 모두 너무나 정교하고 심층적인 장면들로 이루어진다. 여러 층의 패브릭 콜라주와 다양한 모티브의 조합으로 완성되는 작가의 그림은 사이보그, 정치인, 그리고 꽃으로 가득 찬 환상의 어반 코스모스로 관객을 단숨에 끌어들인다. 복잡하게 파편화된 작품의 표면은 현대 생활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정신적 균열을 반영하며, 우리의 삶 안에서 공존하는 '현실'의 다양한 층을 나타낸다. 20세기 초 독일의 표현주의가 그 시대의 기술적 혁신의 결과를 논하였듯 작가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그리고 그러한 테크놀로지를 통제하는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의존하며 변해가는 현대사회의 정신성과 도덕성을 관찰한다. 아민 보엠의 작업에는 떨칠 수 없는 불안감이 흐른다. 작가는 “최근 우리의 삶은 검토되지 않은 긍정성에 지배되고 있다”고 말하며, 온라인에서 받는 ‘좋아요’ 수가 점점 더 중요시 여겨지는 현 시대에서 우리가 정신적으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삶 속 불안과 비극을 억누르지 않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믿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영국 데본의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캐서린 안홀트(Catherine Anholt, b.1958, UK)는, 1985년 영국 왕립미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기 전부터 이미 수많은 페인팅과 드로잉을 제작해왔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기록해 온 비주얼 다이어리와 병행해 작업하는 그녀는, 루소나 마티스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며, 전통적이거나 종교적인 미술 양식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질감과 선을 통해 다양한 시각적 문화에 대한 오마주를 제시한다. 지난 30여 년간 남편 로렌스와 함께 200권이 넘는 동화책을 제작하며 삽화가로도 활동해온 그녀는, 창작과 스토리텔링에 대한 부부의 공동된 열정을 정글처럼 우거진 정원에 둘러싸인 집에서 꽃피워왔다. 안홀트의 회화는 모성애, 가족, 자연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과 예술적 여정을 반영하며, 나아가 우리 삶을 이루는 다양한 형태의 연대에 대한 은유적 고찰을 담아낸다.

 

데일 루이스(Dale Lewis, b. 1980, UK)는 향락에 빠진 현대 도시상을 그리며 우리의 삶 속 분명 존재하지만 종종 방관과 부정의 대상이 되는 다양한 사회적 부패를 강조하고 현대사회 깊숙이 자리잡은 상반되는 이념 및 요소들을 조명한다. 개인적 서사와 직접 목격한 상황들을 회화로써 화폭에 펼치는 작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을 토대로 광란의 스테이지를 구축하고, 과장된 환상과 사회적 사실주의가 뒤섞인 우화적 내러티브를 만들어간다.

 

대니 레이랜드(Danny Leyland, b.1994, UK)는 회화를 중심으로 판화와 글쓰기의 요소를 결 합하여 장소와 기억에 대한 관계를 탐구한다. 그의 회화는 인물과 풍경을 묘사하며, 색의 반전과 중첩을 통해 해석을 어렵게 만들고, 주체 간 경계를 흐립니다. 복잡한 붓질은 느리 고 몰입적인 감각을 불러 일으킨다. 대니는 개인적인 경험과 일상적인 장면들—자신이 살았던 아파트, 캠핑 여행, 상점 창문 등을—작품에 담아내며,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 영적 울림을 찾아간다. 그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엮어 역사적 이미지와 재연을 통해 시간의 틈새를 만들어내며, 과거를 고정된 해석 이 아닌 일시적인 경험으로 제시한다.

 

우베 헤네켄(Uwe Henneken, b.1974, German)의 작업 속 환상적인 풍경들은 이미 오래 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왕국의 밖에서 방랑하는 이들을 위한 휴식처이다. 작가는 현란한 색감의 팔레트로 동화(fairy tale)의 이미지를 만화적이면서도 표현주의적으로 구현하고, 오색 꽃이 가득한 참나무 숲과 광활한 산맥 등 낭만적이고 웅장한 배경을 통해 환각의 판타지로 관객을 이끈다. 작품을 통한 영적 표현에 초점을 맞추는 작가는 우리 모두가 영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미지의 세계를 엿보고 그 비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샤먼(shaman)과 같이, 우베 헤네켄의 몽환적인 작품은 인간의 영적 휴식에 대한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