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GNE] Architectonics of Ghosts: Jae Ho Jung

27 March - 26 April 2026

미하엘 호어바흐 재단은 정재호 작가의 개인전 『유령의 건축술』을 독일 쾰른에서 개최한다. 해당 전시는 초이앤초이 갤러리의 기획으로 3월 27일부터 4월 26일까지 진행된다. 작가는 오랫동안 도시 속 오래된 건축물과 공간을 관찰하고 그 표면에 축적된 시간의 흔적을 회화로 기록해 왔다. 그의 작업은 한국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 속에서 형성된 장소와 기억,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든 인간의 삶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한국의 근대사를 화면에 담는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 온 도시 건축과 시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충정아파트를 비롯한 일련의 회화를 선보인다.

 

정재호의 작업은 건축이 완성되는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에 시작되는 또 다른 시간에 주목한다. 건물은 처음에 특정한 의도와 이상을 담아 세워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형태는 서서히 변형된다. 증축과 보수, 사용의 흔적, 환경의 침식, 그리고 그곳을 둘러싼 다양한 조건들이 겹겹이 축적되며 건축은 점차 단일한 설계의 결과로 환원되기 어려운 상태로 이동한다. 작가가 ‘유령의 건축술’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하는 비가시적 과정이다. 그것은 특정한 주체의 행위라기보다 시간과 사용, 물질과 환경이 뒤섞이며 건물 위에 축적되는 변화의 힘에 가깝다. 여기서 유령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이미 지나갔지만 여전히 현재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시간의 방식이다.

 

충정아파트를 다룬 일련의 회화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밀도 높게 드러낸다. 1932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수차례의 증축과 구조 변경, 그리고 생활의 흔적이 중첩되며 원래의 건축적 질서를 명확히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러 있다. 작가는 이 장소를 근대 건축의 표본이나 단순한 향수의 대상으로 다루기보다, 표면 위에 축적된 물질적 시간의 징후들을 집요하게 관찰한다. 이때 낡음과 부식, 덧대어진 흔적들은 건축의 외부에 놓인 요소라기보다 건물의 현재를 구성하는 층위로 드러난다. 복도와 계단, 난간과 창문, 굴뚝과 옥상과 같은 공간의 세부들은 서로 다른 시점에서 포착된 장면으로 화면 속에 축적되며, 하나의 장소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모자이크처럼 드러낸다. 이러한 관찰은 단순히 철거를 앞둔 건물을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고,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형성된 도시의 기억과 그 안에 축적된 인간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아카이빙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정재호의 회화는 대부분 한지 위에 그려진다. 물감을 흡수하며 번지게 하는 한지의 물성은 오래된 벽면과 콘크리트의 표면처럼 시간에 의해 변화하고 마모된 질감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면 위에 남겨진 색과 흔적들은 마치 건물의 표면처럼 층층이 축적되며, 장소에 스며든 시간의 깊이를 감각적으로 환기한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영화 속 얼굴 연작 역시 이러한 시간 감각과 긴밀히 호응한다. 이 얼굴들은 특정 인물의 재현이라기보다, 이미 지나간 시대의 표면 위에 남아 있는 정서적 잔상에 가깝다. 정지된 표정과 시선은 과거를 서사적으로 복원하기보다, 현재 속에서 미묘하게 지속되는 시간의 층위를 환기하며, 사라진 것들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어떤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회화는 벽 위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바닥 위에 세워진 얼굴들과 건물의 이미지들은 관객의 이동과 시선의 변화 속에서 서로 다른 거리와 각도로 경험된다. 이러한 배치는 건축 이후에 축적되는 시간의 비균질성을 공간적으로 번역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관객은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 머무르기보다, 서로 어긋난 높이와 방향 사이를 이동하며 작품과 조우하게 된다.

  

정재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극적인 파괴의 순간이 아니다. 오히려 거의 감지되지 않을 만큼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변화, 그리고 그것이 물질의 표면에 남기는 미세한 차이가 핵심을 이룬다. 건물은 완전히 사라진 이후가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상태 속에서 이미 다른 시간들이 스며들고 있음을 작가는 보여준다.

 

‘유령의 건축술’은 바로 그처럼 건축 이후에도 계속해서 작동하지만 누구의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시간의 작용에 대한 이름이다. 이 전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표면 위에서, 무엇이 이미 지나갔고 무엇이 여전히 남아 작동하고 있는지를 다시 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