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은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시간,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서사를 교차하고 뒤섞으며 가려져 있던 인식의 잉여지대를 드러내고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그의 작업에서 역사는 연대기적으로 정리된 기록이 아니라, 흩어진 사건과 사소한 흔적,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들이 겹겹이 포개지며 다시 구성되는 하나의 장면에 가깝다. 자연의 흐름, 사라진 목소리,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의 작업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현재로 소환된다.
이번 전시는 나현이 지속적으로 전개해 온 ‘역사해석’의 궤적을 따라가며, 인간과 자연, 기억과 장소, 신화와 현실이 만나는 지점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의 중심에는 장기간에 걸쳐 이어져 온 프로젝트 ‘빅풋을 찾아서’의 대형 설치 작업이 자리한다. 1980년 5월 18일 대한민국 광주의 518 민주화 운동과 같은 날 일어난 미국 세인트 헬렌스 화산의 폭발을 함께 잇는 이 작업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발생한 사건들을 연결하며, 역사 속에서 쉽게 잊히거나 삭제된 존재들을 다시 불러내는 시도이다. 거대한 빅풋의 형상은 신화적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폭력과 저항의 흔적을 품은 증거로서, 관객 앞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함께 소개되는 ‘포모사 프로젝트’는 대만 타로막족과 파이완족의 자연관과 삶의 방식을 바탕으로, 인간과 환경 사이의 균형과 금기에 대한 사유를 확장한다. 이 작업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규율과 기억, 공동체의 질서를 담고 있는 살아 있는 구조로 나타난다. 식물 채집과 기록, 리서치 기반의 설치는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바벨탑 프로젝트’의 일부인 ‘Walnut Babel Tower, 2013’는 베를린의 악마의 산과 서울 난지도를 통해 전체주의 근대사를 소환하며 언어의 분화와 이동, 이주와 혼종의 문제를 다층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목재 구조물과 아카이브, 인터뷰 자료로 구성된 이 작품은 하나의 탑이자 기록 보관소처럼 기능하며, 서로 다른 문화와 목소리가 교차하는 지점을 시각화한다. 여기에 더해 전시에는 ‘난지도 귀화식물 연작’에 포함된 작품들이 함께 배치되어, 이동과 정착, 생태와 사회의 관계를 다양성이라는 또 다른 층위로 확장한다.
영상 작업으로는 ’나현 보고서-민족에 관하여’ 프로젝트의 일부인 쿠바 촬영 영상 ‘Arbol, 2012’이 상영된다. 쿠바에 정착한 한국 인조의 사람들을 배경으로 사탕수수와 이주 노동의 역사, 퍼포먼스 드로잉이 결합된 이 영상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지닌 복합성과 불안정성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개인의 몸과 세계사의 흐름을 연결한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업들은 각각 다른 시간과 장소를 배경으로 하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자연의 질서, 기록과 망각 사이의 긴장 관계를 드러낸다. 나현은 사소해 보이는 오브제와 흔적, 주변부의 이야기들을 집요하게 수집하고 배열하며, 그 안에 잠재된 역사적 의미를 끌어올린다. 그의 설치는 완결된 서사라기보다, 끊임없이 확장되는 탐색의 과정이며, 관객은 그 안을 거닐며 각자의 기억과 감각을 더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초이앤초이 갤러리 서울이 연희동으로 공간을 이전한 이후 선보이는 첫 전시로, 3월 21일부터 4월 19일까지 개최되는 나현의 개인전이다. 새로운 장소에서 시작되는 이 전시는, 나현이 오랫동안 구축해 온 사유의 궤적을 다시 한 번 응축해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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