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gne] 44.49.82

8 - 13 November 2025

44.49.82는 영국(+44), 독일(+49), 한국(+82)의 국가번호에서 착안한 제목이다. 20여 년 전, 런던에서 활동하던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고자 최선희 대표가 기획했던 전시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그때 맺어진 인연과 긴 여정의 흐름 속에서, 영국·독일·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작가들을 다시 조명하는 자리이자, 지난 20년 동안 초이와 라거가 한국 현대미술을 유럽에 소개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점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유럽에서 한국 미술에 대한 인식은 희미했고, 전시 환경 역시 열악했다. 많은 프로젝트는 초이와 라거가 가진 에너지와 신념만으로 추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하나씩 쌓아 올린 그 만남들과 시도들은 결국 단단한 숲을 이루었다.

2012년 쾰른에 초이앤라거가 문을 열며 우리의 활동은 더 넓은 무대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초이앤라거 갤러리가 현재의 초이앤초이와 야리 라거로 분리된 후, 다시 함께하는 첫 공동 전시로 한국 작가들의 그룹전을 기획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더욱 상징적인 순간이다. 이 여정에는 열정과 땀, 그리고 흔들림 없는 진정성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길 위에 함께해준 작가들이 있었다.

이번 전시가 그 역사와 마음을 함께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포착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면모와, 그것이 유럽의 시각 속에서 어떻게 반사되고 교차하는지 확인하는 자리이길 기대하며 이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적 감각과 정서가 만나 새로운 접점을 발견하는 순간이 펼쳐지기를 희망한다.


GREEN의 작업은 본능과 생존 의지에 이끌리어 날것 그대로의 긴박함으로 분출되면서 캔버스의 경계를 허문다. 아름다움은 해체되고, 질감은 투쟁의 흔적으로 남겨진다. 이 불안정한 이미지들은 생존과 대면의 적나라한 서사로 펼쳐지며, 생성과 해체 사이를 깜박이듯 오간다. 혼돈과 질서의 위태로운 균형 속에서, 불안은 저항의 내재적 언어가 되어 캔버스에 드러난다.

 

정재호(1971년생)의 작업 속 산업 시대 건축물에 대한 묘사는 궁극적으로 근대사를 접하는 한국의 태도를 반영한다. 그의 그림 속의 낡은 건물들은 우리에게 한때 콘크리트 벽 뒤에 숨죽이며 살아왔던 삶들을 기억하라고 촉구한다 – 그것은 세월과 격변하는 사회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이들의 삶이다. 그에게 예술은 잊혀진 기억을 소환하는 방식이며, 과거 속에서 상실된 것들을 되살려내는 수단이다. 정재호 진솔하고 집요한 시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회화 작업을 통해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과거의 흔적들을 추적하고 수집하여 개인과 집단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전원근(1970년생)은 색을 주된 초점으로 삼는다. 그것은 전원근의 회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며, 그는 색채를 통해서 추상 회화, 특히 모노크롬으로 들어나는 회화의 영역을 탐구한다. 반복적으로 색을 칠하고 지워내는 행위로 나타나는 그의 추상 회화는 캔버스 안에 녹아들은 칼라들로 인해 일종의 아우라나 세월의 무르익음 혹은 삶의 신비로움이 스며드는 순간들에 대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다양한 감상을 끌어낸다.    

 

김민영(1989년생)은 초현실적이고 기이한 것에 대한 관념들을 탐구하며, 일상의 가정적 공간과 사회적 사건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겉보기에는 안전하고 목가적이지만 그림자 속 손과 칼, 기괴한 뱀과 의식들로 묘사된 것처럼 그의 회화 안에는 신비와 위협, 위험이 암묵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영감은 꿈 같은 이미지, 이상과 현실의 형태를 취하며, 특히 구전 및 전설, 민속 설화, 신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소셜 미디어로 나타난다.

 

헬레나파라다(1982년생)은 어머니의 사진첩 속에서 독일로 파견된 한국 간호사들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아, 한국 간호사, 한국의 제사 의식,  그리고 특히 한복과 같은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으며, 이 전통 의상에 얽힌 개인적 이야기들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그림 속 한복은 관람자를 특정한 시대와 순간으로 안내하며, 이 탐구의 영역은 개인의 역사에서 집단적 역사로 확장된다.

 

권순학(1979년생)의 작업은 공간과 풍경 장면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인간의 시각적·인지적 능력과의 관계 속에서 극도로 세밀한 디테일을 탐구한다. 영화는 풍부한 비평적 지형으로서 폭넓은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통찰을 제공한다. 그의 실천은 이미지 그 자체의 창조를 강조한다.

 

남궁솔(1991년생)은 구상과 추상 사이의 경계를 탐구하며, 화면 속에 나타나는 것을 색, 형태, 선으로 번역한다. 수채화, 종이 위 아크릴, 그리고 흑연이나 색연필 드로잉 작업을 통해, 그는 '선택된 기억'이라 부르는 것을 추구한다. 그의 회화는 포착되지 않는 순간들, 대상들, 그러나 흐릿한 관계들에 대한 기억을 끌어낸다. 그의 최근 작업은 형상, 장소, 혹은 사물을 암시하지만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며, 기억의 상호작용이 제공하는 질문-우리가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보는가-을 통해 고정된 서사보다는 다층적인 읽기를 끌어낸다.

 

유진영(1977년생)은 외적 자아와 내적 자아 사이의 괴리를 탐구하며, 자신의 스튜디오 작업에서 인간의 투명성에 대한 갈망을 조각 작업으로 다룬다. 사회에 내재된 두려움에 맞서고 개인의 자유를 완성하려는 것에 대한 그녀의 작업 철학은 일관되게 유지되며 이러한 사회적 규범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 대조적인 재료와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활용하면서 더욱 명확해진다. 의상과 장식의 화려하게 칠해진 조각의 외면은 구축된 파사드를, 즉 사회적 역할을 의미하는 반면, 무게 없고 투명한 PVC는 동시에 벗은 몸과 취약성의 상징이자 보호를 향한 갈망을 나타낸다.

 

유재연(1988년생)은 기억과 상상 사이의 경계 공간을 탐구하며, 판타지 소설을 연상시키는 초현실적 서사 속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녀의 그림에서 자연과 건축은 병치되며, 사실적 장면과 알 수 없는 풍경이 어우러진다. 그녀의 회화는 방문했던 장소와 미지의 영역, 지식, 감정, 꿈, 그리고 사실이 유령처럼 떠도는 영역을 불러내며, 궁극적으로 캔버스 위에 살아 숨 쉬는 풍경으로 정착한다.

 

유지영(1991년생)은 사회적으로 구축된 질서와 범주가 우리의 의식 확장에 대한 시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주목한다. 그녀는 체계 내부의 억제할 수 없는 균열과 그 밑에 깔린 잠재적 욕망을 가시화하고자 시도하며, 회화, 조각, 설치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를 탐구한다. 그녀의 작업은 최대한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약속하고, 안전과 편안함을 보장하는 시스템들을 조사하며, 그 배후의 이유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간과 공간을 시각적 패러다임으로서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