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영은 투명한 PVC로 제작한 실물 크기의 인체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이 인물들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invisible people)’이라 명명한다. 이 인물들은 화려한 패턴의 옷과 장식품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얼굴은 가면처럼 무표정하고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외양은 화려하나 투명한 몸은 공허한 내면을 드러내며, 익명성·고립감·인간적 교류의 상실이라는 주제를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인물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며, 개인과 사회, 내적 자아와 외적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질문한다.
유진영의 조각은 섬세하고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얼굴은 흙으로 빚은 뒤 실리콘 틀을 제작해 FRP(Fiberglass Reinforced Plastic, 섬유 강화 플라스틱)로 캐스팅하며, 신체는 흙작업으로 형상을 만든 후 석고 캐스팅을 거쳐 PVC(Polyvinyl Chloride, 폴리염화비닐)로 옮겨낸다. PVC는 커다란 책받침과 유사한 경질 플라스틱으로, 열을 가하면 말랑해지는데 이때 석고틀에 눌러 형태를 떠낸다. 이후 얼굴, 신발, 몸체를 각각 정교하게 사포질하고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뒤, 낚시줄을 이용해 각 부분을 하나의 몸체로 연결한다. 초기에는 파스텔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아크릴 물감으로만 작업하며, 특히 눈 주변과 코를 붉게 처리해 인물에 특유의 생기를 불어넣는다.
작가의 작업은 미술사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 조지 시걸(George Segal),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 등 20세기 후반 서구 조형미술가들이 탐구한 주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 이들 작가들이 표현하고자 한 현대 사회 속 인간성의 부재, 소외되고 상처받는 개인이라는 주제를 유진영 역시 다루고 있다. 특히 작품에 나타나는 무표정한 얼굴은 실제 얼굴이면서도 감정을 숨긴 채 외부에 드러나는 사회적 얼굴, 즉 가면을 연상시킨다. 가면은 본래 종교적·의례적 행위나 연극에서 진짜 얼굴을 가리고 다른 존재를 대신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가면은 정체성을 은폐하거나 사회적 역할에 맞는 모습을 연기하는 개인을 상징하게 되었다. 유진영의 작업은 이 전통적 맥락을 현대적으로 확장하여, 사회 속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을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드러낸다.
1977년 한국에서 태어난 유진영은 현재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2005년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조소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초이앤초이 갤러리 쾰른과 로스앤젤레스 쇼샤나 웨인 갤러리에서 개인전, 쾰른 미하엘 호어바흐 재단, 노르웨이 베스트포센 미술관, 옐로스톤 미술관(미국 몬태나), 경남도립 미술관, 사비나미술관(서울) 등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국제적으로 폭 넓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