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So Serious?

Press Release

우주의 극지 탐험가

글_스테판 베르그 (독일 본(Bonn)미술관 관장)

필립 그뢰징어가 가장 선호하는 작업의 배경은 우주인데, 그 이유는 단지 그가 공상과학 영화에 관한 전문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주공간은 작가에게 현실세계의 제약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상과학 영화들이 그러하듯 이러한 창작의 자유로움은 상상 속의 기술을 통한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닌, 우리 시대의 사회적 문제들을 탐구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공상과학 장르는 지구와 수천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일어나는 머나먼 미래를 보여주지만, 항상 우리의 현재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안정적인 기반을 잃어버린 세상을 그리는 그뢰징어의 작업 또한 복잡한 코드와 은유적 상징들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함을 논한다.

대중문화와 예술사의 다양한 모티브로 가득 찬 작가의 작품세계는 활기찬 에너지와 강렬한 색감이 흘러넘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낙천적이고 알록달록한 헤도니즘(Hedonismㆍ쾌락주의) 뒤에 무시할 수 없는 어둠과 우울함이 자리잡고 있다. 천진난만하면서도 디스토피아적인 이 행성들을 배경으로 흰색의 괴물, 그 기능이 무엇인지 모르는 기이한 구조물들, 우주의 소용돌이, 부담스러울 만큼 다채로운 꽃들, 그리고 거친 파도 속 홀로 남겨진 선원의 모습이 거듭 등장한다.

흔들리고 흐트러지기를 반복하는 작가의 세계는 허술하고 일시적인 만남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연대가 영원함을 대체한다. 신표현주의적 감성과 아르브뤼(Art Brutㆍ원생미술/날 것 그대로의 순수한 미술)의 영향을 받은 붓 터치로 그려지는 그의 우주는 역동감에 사로잡혀 정신적 풍경으로 함축되며, 한 때 세상의 정점에 자리 잡았던 작품 속 인물은 안쓰럽고 무력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품 <I just can't get you out of my head>(2022)에서 볼 수 있듯, 나무로 지어진 작은 오두막은 그뢰징어의 작품에서 ‘안전함을 의미하는 상징성’으로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집을 지탱하고 있는 지반은 전혀 단단해 보이지 않고, 벽난로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는 하얀색의 괴물로 탈바꿈하며, 홀로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은 온유함 너머로부터 다가오는 위험을 알아채고 두려움에 손을 뻗는다. 또 다른 작품 <Frank Arthur Worsley>(2022)는 이러한 자아를 향한 위협을 더욱 명확하게 부각시킨다. 거대한 뱀과 같은 괴물 파도에 휩쓸린 바다에서 용감한 선원은 기괴한 우주의 현상으로 뒤덮인 하늘을 향해 SOS 플레어(Flare)를 발사하지만, 어디에서도 구원을 기대할 수 없다.

그뢰징어는 작품의 타이틀에서 또 다른 역사적 흔적을 남긴다. 뉴질랜드 출신의 극지탐험가였던 프랭크 워슬리(Frank Worsley, 1872~1943)는 1914부터 1917년까지 이어졌던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Ernest Henry Skackleton)의 두 번째 남극 탐험의 선장이었다. 유빙에 의해 배는 침몰하였지만, 워슬리는 모든 선원들을 남부 셰틀랜드군도에 있는 엘레판 트 섬(Elephant Island)으로 안전하게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작가는 <Returning to elephant island> (2022)에서 이 여정에 한 작품을 바치지만, 거대한 구체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우주의 파편들은 워슬리의 어려운 귀환 길에 또 다른 불길함을 선사한다. 엘레판트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인 펜드라곤산을 그린 <Mount Pendragon> (2022) 또한 탐험가의 도착지는 구원의 땅이 아님을 암시한다. 흰 눈이 내린 듯이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한 쌍의 눈을 뜨며 필립 거스턴 (Philip Guston, 1913~1980)의 많은 후기작에서 볼 수 있는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KKK)’의 후드를 연상시키며, 산의 정상으로 향하기 위한 사다리들 사이에는 너무 큰 간격이 벌어져 있어 마치 추락을 의도한 듯 보인다.

이어 작품 <Thin red Line 1 & 2> (2019) 2점 의 연작에는 흰색의 몬스터가 광선을 방출하는 수수께끼의 장치를 다룬다. 배경이 되는 우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사로잡히고, 이러한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을 잠시라도 멈출 수 있다면 무엇이든 유토피아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총체적인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그뢰징어의 작품들은 재난과 카오스뿐만 아니라, 낙관주의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것 또한 멸망의 필연성이 아닌 영국 소설가 말 콤 라우리(Malcolm Lowry, 1909~1957)의 소설 『화산 아래서』(1947)에서 일컫는 ‘화산 가장자리에서의 춤’이다. 라우리의 소설은 반복, 불연속, 그리고 생각의 파편들이 흘러나오는 문체를 통해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존재하며 분해되는 망상적 속의 세계를 묘사한다. 필립 그뢰징어 역시 자신의 작품 속의 세계를 뒤흔들며 회화를 통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 모든 것들은 무너지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우주의 종말 속에서 유머를 찾는 작가의 이러한 이중적인 시선은 전시명 ‘Why so serious?’를 통해서도 반영된다.

강렬한 호러바쿠이(horror vacui*)가 지배하는 작가의 우주 속 가장 두드러지는 상징 중 하나는 ‘롤러코스터’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의 옛 작품 중 하나 인 작품 <Die ewige Wiederkehr>(2015)에서 등장하는 희고 붉은 루프의 거대한 롤러코스터 레일은 거미줄처럼 얇은 지지대에 지탱되어 보는 이를 불안에 사로잡는다. 레일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듯 보이는 케이블 또한 얼기 설기 뒤섞이어 믿음을 주지 못한다. 무한함을 상징하는 리본 형태의 루프는 그뢰징어의 롤러코스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티브로, 또 다른 롤러코스터를 그린 작품 <Loop quantum gravity>(2022)에서 다시 한번 등장한다. 작품의 타이틀은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on) 감독의 획기적인 공상과학 영화 ‘그래비티’(2013)와 007 시리즈의 ‘퀀텀 오브 솔러스’(2008)을 동시에 암시하는 듯하며, 쿠아론 감독의 영화는 같은 장르의 작품들이 종종 그래왔듯이 우주의 억압적이고 반인간적인 외로움과 냉혹함을 강조한다. 흙에 덮인 땅 위에 자리 잡은 롤러코스터 레일은 이 작품에서도 텅 비어 있다. 수평선 위의 바다는 분홍색 산 군도까지 뻗어 있고, 그 중간엔 익숙한 작은 오두막이 하얀 연기구름을 내뿜으며, 롤러코스터의 루프 주변에 마치 수리공을 기다리는 듯 여러 개의 사다리가 설치 되어있다. 레일 앞 리본 위에 앉아있는 검은색 형상은 자신 앞에 놓여있는 연못 위로 낚싯대를 잡고 있다. (*공간외포/空間畏佈: 일체의 허무를 싫어하는 인간본성에 바탕을 두는 심리작용)

<Loop quantum gravity> 그림 속 모든 존재는 영원히 반복되는 기다림의 순환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롤러코스터의 레일은 결코 시작되지 않을 움직임을 기다리며, 만약 기다려왔던 움직임이 시작된다 한들 그저 영원한 반복으로 이어질 뿐이다. 낚시꾼 또한 물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건 져보려 헛된 기다림을 이어갈 뿐이다. 사무엘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 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이 필립 그뢰징어의 작품세계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더라도 이 세상의 불합리성을 충분히 자각하며, 같은 연극을 끝없이 반복한다. 필립 그뢰징어는 전시될 모든 작품들의 장난스럽고 유머러스하지만 어둡고 우울한 측면들을 통해, 우리의 세상은 더 이상 근본적인 질서를 따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질서의 존재 자체 또한 환상이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현실은 조화를 이루길 거부하는 ‘겹치고 모순되는 관점들’이 지배하며, 우리는 그저 이 러한 모순들을 받아들이고 맞춰가며 생산적인 부조리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Press Release

[ENG] 

Polar explorers in space

Stephan Berg (Intendant I Director KUNSTMUSEUM BONN)

Philip Grözinger's fondness for painting outer space cannot be solely credited to his expertise in the history of science fiction films. For him, outer space is a stage on which the world can be depicted and invented anew, far removed from any faithful representation of our earthly reality. As in science fiction films, however, the crux of Grözinger’s oeuvres does not lie in futuristic escapism, but rather in the examination of our time’s ongoing social challenges. The SF genre, while showing the future in distant planetary spaces, always tells us something about our present. This also applies to Grözinger's works and his complexly coded, painterly metaphors for a world that has lost its firm foundation. Filled with a vocabulary of motifs from pop culture, as well as from art history, they vibrate with an energetic impulse and intense luminosity. Behind its seemingly affirmative, candy-coloured hedonism, however, a good deal of darkness and melancholy awaits. Recurring elements in this simultaneously playful and dystopian planetary backdrop are white monsters, strange structures with enigmatic functions, swirling eddies, painfully colourful flowers and, again and again, the lone seafarer in the wild vortex of roaring tides.

In his paintings, the artist creates a course of staggering and wavering. Certainties are dissolved and replaced by fragile, momentary connections and mercurial constellations. Fed by a painterly style that is equally characterised by neo-expressive impetus and Art Brut influences, his cosmic expanses are seized by the immense furore of the movement within. They condense into densely orchestrated mental landscapes in which the once supposedly sovereign subject appears largely helpless. 

As is the case in I just can't get you out of my head (2022), a cosy cabin repeatedly appears as a symbol of security in Grözinger's compositions. Upon second glance, however, the cabin does not seem to stand on any solid ground, and the smoke rising from the chimney condenses into a white monster. The seafarer abandoned lonely at sea clearly points to the danger that lies in the supposed idyll. This danger to the ego is even more clearly thematised in Frank Arthur Worsley (2022). In a sea churned up by gigantic, snake-like monster waves, the brave sailor futilely fires his SOS flares into a sky dominated by strange planetary formations. 

Grözinger has also left traces of history in the titles of his works. Frank Worsley (1872-1943), a New Zealand polar explorer, was captain on Ernest Shackleton's second Antarctic expedition of 1914-17. The expedition’s ship sank in the pack ice, but Worsley managed to bring all the members safely to Elephant Island in the archipelago of the South Shetland Islands. In Returning to elephant island (2022), Grözinger dedicates the entire piece to this rescue, but not without also depicting the looming presence of a vortex of orbiting fragments around a glowing planetary ball that threatens to disrupt this homecoming. And Mount Pendragon (2022), the highest mountain on Elephant Island, does not present itself as a place of rescue. The white sugarloaf peaks, in one case even armed with a pair of eyes, are more reminiscent of the gloomy Ku Klux Klan robes to which Philip Guston dedicated so many of his later works. Moreover, the large gaps between the ladders that aid in the hike to the peaks seem to suggest that the fall is inevitable. 

In Thin red line 1& 2 (2019), one of Grözinger's typical white monsters tries to orientate(?) itself with a strange, ray-emitting apparatus. Behind it, space itself is gripped by such a fundamentally cosmic, all-engulfing vortex that anything to halt it would seem comparatively utopian. Despite it all, in all of Grözinger's paintings, elusive optimism and humour – and not just catastrophe and abyss - prevail. What this work shows is not the inevitability of an impending apocalypse, but rather the dance on the edge of a volcano as Malcolm Lowry had put it in his 1947 novel Under the Volcano. The novel’s language itself, with its repetitions, discontinuities and scraps of thought, forms a delirious image of a dissolving world that is both heaven and hell at the same time. Grözinger’s painterly expression echoes this dichotomy as he spins his world into disarray: everything falters, but things are never truly lost. The title of this exhibition ‘Why so serious?’ seems to put it succinctly.

Characterised by extensive horror vacui, Grözinger’s cosmos finds its most symbolically coherent foundation in the image of the roller coaster. In his older work Die ewige Wiederkehr (The Eternal Return, 2015), it appeared as a gigantic, pennant-adorned red and white loop resting on legs as thin as cobwebs, the structural integrity of which left the viewer unnerved. The cable-laden apparatus, which seemed to provide the energy supply for the track, did not inspire much confidence either with its curls and loops seemingly tangling around themselves. In Loop quantum gravity (2022), a variation of the infinity symbol inherent in Grözinger’s loops appears once again. The title seems to allude equally to the James Bond film Quantum of Solace and to the epochal SF film Gravity (2013) by Alfonso Cuarón. The latter follows the footsteps of a few SF films set in outer space, highlighting the oppressive, anti-human loneliness and coldness of the universe. Again, the rollercoaster track, propped up on an earthy ground, is empty. Meanwhile, the already familiar cabin exhales a great whitish cloud of smoke from afar, and the sea stretches out on the horizon to a pink mountainous archipelago. There are several ladders on and around the rollercoaster’s loop, as if to wait for a maintenance worker to arrive. A black, stocky figure sits atop a piece of ribbon, and holds its fishing rod over the nearby pond.

Everything in this picture is stuck in an eternal cycle of anticipation. The rollercoaster track speaks of a movement that shows no sign of beginning. Even if it ever did, it would only lead to a never-ending repetition. And the lone figure, too, waits in vain to fish something helpful out of the depths of the water. As in ‘Waiting for Godot’, the same play is performed over and over again in Philip Grözinger's pictorial world - perhaps not hopelessly, but nevertheless with a due knowledge of the absurdity of this world.

With this painting, and with the entire exhibition and all of its simultaneously playful, witty, but also melancholic and gloomy elements, Grözinger not only conveys that the world can no longer be oriented towards a fundamental order, but insists that the existence of such order has always been a mere fantasy. Instead, we should accept that our reality consists of a multitude of overlapping, contradictory perspectives. Rather than existing in harmony, they ask to be endured and shaped in favour of productive absurdity.

Press Release

[GERMAN]

Polarforscher im Weltraum

Stephan Berg (Intendant I Director KUNSTMUSEUM BONN)

Der malerische Lieblingsort von Philip Grözinger ist der Weltraum, und dies nicht nur, weil er ein exzellenter Kenner der Geschichte des Science-Fiction Films ist. Der Weltraum ist vielmehr für ihn die Bühne, auf der sich die Welt neu darstellen und erfinden lässt, fernab von jeder realistischen Abbildung unserer irdischen Wirklichkeit. Wie im Science-Fiction-Film geht es dabei aber gerade nicht um einen technikverliebten Eskapismus, sondern durchaus um eine Auseinandersetzung mit den gesellschaftlichen Herausforderungen unserer Jetzt-Zeit. So gesehen erzählt das SF-Genre, während es die Zukunft in fernen planetaren Räumen zeigt, zugleich immer von unserem Heute. Auch Das gilt auch für Grözingers Arbeiten, diesen komplex codierten, malerischen Metaphern für eine Welt, die ihr festes Fundament verloren hat. Angefüllt mit einem Motivvokabular aus dem popkulturellen Raum, aber auch aus der Kunstgeschichte vibrieren sie mit einem energetischen Impuls und einer intensiv-leuchtenden Farbigkeit, die nicht verdecken kann, dass hinter so viel - auf den ersten Blick - affirmativ wirkendem bonbonbuntem Farb- und Motiv-Hedonismus ein gehöriges Maß an Dunkelheit und Melancholie steckt. Wiederkehrende Elemente in dieser gleichzeitig verspielten, dystopischen und planetaren Sonderwelt sind weiße Monster, merkwürdige apparatehafte Gebilde mit rätselhaften Funktionen, saugende kreiselnde Wirbel, schmerzhaft bunte Blumen und immer wieder die Gestalt des einsamen Seefahrers im wilden Wirbel tosender Gezeiten.

In seinen Bildern entwirft der Maler einen Parcours des Taumelns und Schwankens, des Auflösens von Gewissheiten, an deren Stelle fragile, momenthafte Verknüpfungen und dynamische, permanenten Änderungen unterworfene Konstellationen treten. Gespeist aus einem gleichermaßen von neoexpressivem Furor wie Art Brut-Einflüssen geprägten malerischen Duktus, verdichten sich seine kosmischen Weiten, die stets von einem ungemeinen Bewegungs-Furor ergriffen sind zu dicht orchestrierten mentalen Landschaften, in denen das einst vermeintlich souveräne Subjekt weitgehend hilflos erscheint.

Zwar taucht, beispielsweise in I just can´t get you out of my head (2022) immer wieder ein kleines gemütliches Holzhaus als Symbol der Geborgenheit in Grözingers Bildern auf. Aber erstens scheint es selbst auf keinem festen Grund zu stehen und zweitens verweisen der aus dem Kamin steigende, sich zu einem weißen Monster verdichtende Rauch und der einsam auf dem Meer in einem Nachen ausgesetzte Seefahrer deutlich auf die Gefährdung, die in der vermeintlichen Idylle liegt. Noch deutlicher wird diese Gefährdung des Ichs in Frank Arthur Worsley (2022) thematisiert. In einem von gigantischen, schlangenartigen Monsterwellen aufgewühltem Meer feuert der tapfere Seefahrer seine SOS-Leuchtraketen in einen von merkwürdigen Planetengebilden beherrschten Himmel, ohne dass er von irgendwoher Rettung erwarten darf.

Mit dem Titel des Bildes legt Grözinger allerdings noch eine weitere, historische Spur:  Worsley (1872-1943), ein neuseeländischer Polarforscher, war auf Shackletons zweiter Antarktis-Expedition von 1914-17 Kapitän auf der Endurance, die bei eben dieser Expedition im Packeis unterging. Worsley aber gelang es anschließend alle Expeditionsteilnehmer sicher nach Elephant Island im Archipel der südlichen Shetlandinseln zu bringen. Grözinger widmet dieser Rettung mit Returning to elephant island (2022) ein eigenes Bild, nicht ohne diese Heimkehr mit einem Wirbel zentrifugal um einen glühenden Planetenball kreisender Fragmente wieder gehörig zu destabilisieren. Und auch Mount Pendragon (2022), der höchste Berg auf Elephant Island zeigt sich nicht in erster Linie als Rettungsort. Die weißen zuckerhutähnlichen Gipfel, in einem Fall sogar mit einem Augenpaar bewehrt, erinnern eher an die düsteren Ku-Klux-Klan Hauben, denen Philip Guston so viele seiner späteren Bilder widmete. Zudem klaffen zwischen den Leitern, die zu den Gipfeln führen sollen, so große Lücken, dass der Absturz wohl vorprogrammiert scheint.

Auch der Weltraum, in dem sich in Thin red line 1und 2 (2019) eines der typischen weißen Monster Grözingers mit einer komplizierten, Strahlen sendenden Apparatur zu orientieren (?) versucht, ist von einem so fundamentalen kosmischen, saugenden Wirbel ergriffen, dass jeglicher Halt vollkommen utopisch erscheint. Dennoch herrscht auf allen Bildern Grözingers nicht nur Katastrophe und Bodenlosigkeit, sondern auch ein schwer zu fassender Optimismus und Humor. Was dieses Werk zeigt ist nicht die Unausweichlichkeit einer drohenden Apokalypse, sondern eher der Tanz am Rande des Vulkans, so wie dies Malcolm Lowry in seinem 1947 erschienenen Roman Unter dem Vulkan formuliert hatte.  Ähnlich wie in diesem Roman die Sprache selbst mit ihren Wiederholungen, Diskontinuitäten und Gedankenfetzen ein delirierendes Bild einer sich auflösenden Welt formt, die zugleich Hölle und Himmel ist, argumentiert auch Grözinger malerisch, wenn er seine Welt ins Trudeln versetzt:  Alles schwankt, aber die Dinge sind nie gänzlich verloren. Why so serious, der Titel dieser Ausstellung, ist so gesehen durchaus Programm.

Sein symbolisch schlüssigstes Fundament findet dieser von einem starken Horror-Vacui geprägte Kosmos im immer wieder aufgegriffenen Bild der Achterbahn. In „Die ewige Wiederkehr (2015) zeigte sie sich als eine gigantische, wimpelgeschmückte weiß-rötliche Schleife, die auf so spinnwebdünnen Beinen ruht, dass man sich um ihre Statik ernsthaft Sorgen machen muss. Auch die kabelbewehrte Apparatur, die möglicherweise die Energieversorgung der Bahn besorgt schaffte hier kein Vertrauen, zumal sich ihre Kabel-Kringel und Schleifen eher um sich selbst zu drehen schienen. Auf Loop quantum gravity (2022) variiert Grözinger das Endloszeichen, das in seiner Loop-Architektur steckt ein weiteres Mal, wobei der Titel gleichermaßen auf den Bond-Film Ein Quantum Trost, wie auf den epochalen SF-Film Gravity (2013) von Alfonso Cuarón anzuspielen scheint, der wie wenig andere Weltraumfilme, die beklemmende, menschenfeindliche Einsamkeit und Kälte des Kosmos deutlich gemacht hatte. Wiederum ist die, auf einem schmutzig-braunen Erdboden aufgebockte Achterbahnschleife leer, während sich am Horizont das Meer bis hin zu einem rosafarbenen Gebirgsarchipel ausdehnt und im Mittelgrund das schon vertraute kleine Holzhaus eine große weißliche Rauchwolke ausatmet. An und auf der endlosen Achterbahn befinden sich mehrere Leitern, ganz so als seien hier noch Reparatur- oder Wartungsarbeiten auszuführen. Zentrale Bedeutung kommt zudem der schwarzen, leicht pyknischen Gestalt zu, die auf einem Schleifenstück sitzend ihre Angel in den vor ihr liegenden Teich hält. Alles auf diesem Bild ist ein ewiger Kreislauf des Wartens.

Die Achterbahnrampe spricht von einer Bewegung, die doch nie einsetzen wird, und wenn, dann doch nur in die ewige Wiederholung führt. Und auch der Angler wartet vergebens darauf, dass er aus den Tiefen des Gewässers etwas fischt, was ihm weiterhelfen könnte. Wie in Warten auf Godot, wird auch in Philip Grözingers Bild immer wieder das gleiche Stück aufgeführt, nicht hoffnungslos, aber doch mit einem gehörigen Wissen über die Absurdität dieser Welt.

Was Philip Grözinger nicht nur mit diesem Bild, sondern mit der gesamten Ausstellung mit all ihren zugleich spielerischen, witzigen, aber eben auch melancholischen und düsteren Aspekten in aller Deutlichkeit zeigt, ist nicht nur, dass die Welt nicht mehr auf eine fundamentale Ordnung hin auszurichten ist, sondern auch, dass dieser lang gehegte Glaube in Wahrheit schon immer ein Fantasma war. Stattdessen sollten wir akzeptieren, dass unsere Realität aus einer Vielzahl sich überlagernder, einander widersprechender Perspektiven besteht, die nicht harmonisiert, sondern im Sinne einer produktiven Absurdität ausgehalten und gestaltet werden wo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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